1. 서 론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 선교사는 한국에서 의료와 교육 선교에 헌신한 여성 선교사로, 특히 여성과 장애인을 위한 의료 선교에 앞장섰습니다. 그녀는 한국 최초의 맹학교인 "경성맹아학교(현 서울맹학교)"를 설립하고, 여성 의료 교육을 발전시키며 조선 여성들의 건강과 권리를 개선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또한, 그녀의 아들 셔우드 홀(Sherwood Hall)은 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 운동을 시작하며 결핵 퇴치에 힘썼습니다. 다시 한번 그녀의 삶과 사역을 돌아보며, 그녀가 남긴 유산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2. 로제타 홀의 한국 선교 여정
로제타 홀은 1865년 미국에서 태어나 의학을 공부한 후, 1890년 감리교 의료 선교사로 조선에 파송되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의료 환경이 매우 열악했고, 특히 여성들은 전통적인 관습에 의해 남성 의사에게 진료받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1890년 9월, 홀 선교사는 조선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의료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서울 정동에 작은 진료소를 열고, 여성과 어린이들을 치료하며 신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조선 여성들을 대상으로 여성 의료 교육을 시작하여 여성들이 직접 여성 환자를 돌볼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남편 윌리엄 제임스 홀은 평양에서 의료 선교 활동을 하던 중 전염병에 걸려 1894년 11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로제타 홀은 남편의 죽음으로 큰 충격과 상실감에 빠졌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남편의 유지를 이어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남편의 장례를 치른 후, 로제타 홀은 1895년 2월 둘째 딸 에디스 마가렛 홀을 낳기 위해 잠시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미국에 머무는 동안 로제타 홀은 아버지 로즈벨트 셔우드의 임종을 지켰고, 1895년 6월 에디스 마가렛 홀을 출산했습니다.
1895년 10월, 로제타 홀은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습니다. 남편의 죽음과 아버지의 임종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녀는 조선에 대한 사랑과 의료 선교에 대한 열정으로 다시 일어섰습니다. 로제타 홀은 남편이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더욱 헌신적으로 의료 활동을 펼쳤습니다.
로제타 홀은 조선에서 여성들을 위한 의료 활동에 앞장섰고, 보구녀관을 확장하여 여성 환자들을 위한 진료를 더욱 확대했습니다. 또한, 여성 의료 교육에도 힘써 여성 의사 양성에 기여했습니다. 로제타 홀은 의료 활동 외에도 다양한 사회 활동을 펼쳤으며, 조선의 독립운동을 지지하며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3. 한국 최초의 여성 의료 교육과 맹학교 설립
1) 여성 의료 교육의 선구자
- 당시 조선에서는 여성들이 의료 교육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 홀 선교사는 여성들에게 간호와 기초 의학을 가르쳐, 조선 여성들이 직접 여성 환자를 돌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 이러한 교육을 통해 한국 최초의 여성 의료인들이 배출되었으며, 이후 여성 의료 교육의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2) 경성맹아학교(현 서울맹학교) 설립
- 홀 선교사는 단순히 의료 선교를 넘어, 장애인을 위한 교육에도 힘썼습니다.
- 1913년, 한국 최초의 맹학교인 경성맹아학교를 설립하여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 당시 조선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심했지만, 그녀는 시각장애인들도 교육을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홀 선교사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조선 여성과 장애인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었으며, 이후 한국 사회에서 여성 의료인과 장애인 교육이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4. 로제타 홀이 남긴 유산과 현대적 의미
1) 한국 여성 의료 발전의 초석
- 그녀는 여성 의료인을 양성하여 조선 여성들이 보다 나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 이러한 노력은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등의 여성 의료 교육기관이 설립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2) 장애인 교육과 사회적 변화
- 한국 최초의 맹학교 설립을 통해, 장애인 교육의 중요성을 알리고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 그녀의 노력 덕분에 이후 한국 사회에서도 장애인 복지와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3) 아들 셔우드 홀과 크리스마스 씰 운동
- 그녀의 아들 셔우드 홀(Sherwood Hall) 역시 한국에서 의료 선교를 이어갔으며,
1932년 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 운동을 시작하여 결핵 퇴치에 힘썼습니다. - 크리스마스 씰 운동은 이후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결핵 퇴치를 위한 중요한 캠페인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5. 결 론
로제타 홀 선교사는 단순한 의료 선교사가 아니라, 조선 여성과 장애인을 위한 교육과 의료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한 인물입니다. 그녀의 노력 덕분에 여성들이 의료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로제타 홀은 남편과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고난 속에서도 한국에 대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의료 선교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숭고한 정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헌 그녀의 헌신적인 삶을 기억하며, 그녀가 남긴 유산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녀의 신앙과 사랑, 그리고 봉사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가르침을 주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