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 론
1866년, 젊은 영국인 선교사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는 조선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대동강을 찾았습니다. 그는 서양 최초로 한반도에 성경을 전한 인물이지만, 조선의 강한 배척 속에서 순교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의 헌신은 이후 한국 교회의 성장에 중요한 씨앗이 되었습니다. 본 글에서는 토마스 선교사의 삶과 사역, 그리고 그가 전한 성경이 한국 교회에 미친 영향을 알아보겠습니다.
2. 토마스 선교사의 삶과 조선 선교의 도전
1) 토마스 선교사의 배경과 선교의 소명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는 1840년 영국 웨일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신앙심이 깊었던 그는 청년 시절부터 해외 선교에 대한 열망을 품었고, 런던선교회(London Missionary Society)의 파송을 받아 1863년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중국에서 사역하던 중 그는 조선에서 기독교가 박해받고 있으며, 아직 복음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그는 조선 선교를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한반도로 향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2) 조선 선교의 어려움과 도전
19세기 중반, 조선은 강력한 쇄국정책을 유지하며 외국인과 외국 종교를 철저히 배척했습니다.
- 1839년과 1866년 두 차례의 천주교 박해로 수천 명의 신자들이 희생되었습니다.
- 개신교 선교사들 역시 조선에서 활동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 조선 선교의 유일한 방법은 성경을 몰래 들여오는 것이었고, 토마스 선교사는 이를 위해 위험을 감수했습니다.
3. 1866년, 대동강에서의 마지막 사역
1) 토마스 선교사의 조선 입국과 성경 배포
1866년, 토마스 선교사는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General Sherman)"를 타고 평양으로 향했습니다.
- 이 배는 무역을 목적으로 조선과 교섭하려 했지만, 조선 정부는 이를 서양의 침략 시도로 간주하고 배척했습니다.
- 토마스 선교사는 이 기회를 이용해 성경을 조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 배가 대동강을 따라 이동하는 동안, 강변에 있는 조선인들에게 한문 성경을 던져 주며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2) 순교의 순간
조선군은 제너럴 셔먼호를 공격했고, 결국 배는 불에 타며 침몰했습니다.
- 토마스 선교사는 강가로 헤엄쳐 나와 마지막 순간까지 성경을 조선인들에게 건네주었습니다.
- 그는 조선 군인들 앞에서 "예수!"를 외치며 성경을 건넨 후, 순교했습니다.
- 당시 그를 처형한 군인과 성경을 받은 사람들은 이후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4. 토마스 선교사가 남긴 성경과 한국 기독교의 성장
1) 박영식, 성경으로 도배된 집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하기 전, 그가 조선인들에게 나누어준 성경 중 일부가 평양성 관리였던 박영식에게 전해졌습니다. 박영식은 성경이 귀한 종이로 만들어진 것을 알고, 버리는 대신 자신의 집 벽에 도배했습니다. 이 사실은 당시 평양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마펫 선교사에게 알려졌고, 마펫은 박영식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박영식은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고, 그의 집은 평양 최초의 교회인 널다리골 교회가 되었습니다.
2) 1907년 평양 대부흥
1907년 평양에서는 한국 기독교 역사상 가장 큰 부흥 운동인 평양 대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장대현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 부흥 운동은 한국 기독교가 민족의 종교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평양 대부흥은 토마스 선교사의 성경과 박영식의 신앙을 통해 뿌리내린 한국 기독교가 민족의 아픔을 함께하는 종교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3) 한국 기독교 성장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와 그가 남긴 성경, 그리고 박영식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는 1907년 평양 대부흥으로 이어진 한국 기독교 성장의 중요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토마스 선교사의 희생과 박영식의 신앙은 한국 기독교가 뿌리내리고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으며, 평양 대부흥은 한국 기독교가 민족의 종교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5. 결 론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선교사는 한반도에 성경을 전한 첫 개신교 선교사로, 그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 한국 교회의 부흥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는 순교했지만, 그의 성경은 조선 땅에서 싹을 틔웠고, 한국 기독교의 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그의 신앙과 헌신을 기억하며, 복음 전파의 사명을 더욱 깊이 새기고 어떠한 신앙을 가져야 될 것인지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